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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Reise/2018 : Japan

[오사카] 퇴사를 결정하다

by 서키르케 2018. 9. 26.

기대를 잔뜩 안고 오사카로 왔지만 6개월만에 퇴사를 결정했다.

이번엔 좀 오래 일을 할 거라 다짐했지만 역시 버릇은 남 못 준다.

꿈꿔오던 지상직이라는 일이 재미있고 매력적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내가 꿈꾸는 완벽한 일은 없다.

외국어를 쓰는 일은 대개 서비스직으로 빠지고 서비스직은 어디나 쉽지 않다.

다른 국적의 사람들은 영어는 곧잘 해도 일본어가 서툰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한국인은 일본어를 금방 배우거나 곧잘 하는 편이고, 영어 또한 잘해만 지원을 할 수가 있다.

일본인보다 당연히 영어도 더 잘하고 일도 더 잘하는 한국인에 대한 차별은 만연하다.

서비스의 질도 한국보다 떨어진다.

정말 놀란 것은 손님에게 곧잘 화를 낸다는 것이었다.

오모테나시(환대)로 유명하다는 일본의 특징은 정말이지 말뿐이다.

서비스직인데도 서비스라곤 존재하지 않는다.

'니네 비행기 다신 안 타'라는 소리를 손님한테서 매일 들었다.

예전에도 일본인이랑은 별로 맞지 않는다고 느끼긴 했다.

그동안 배워온 일본어가 너무 아까워서 일본취업을 결정하긴 했지만 결국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새벽 출근, 오후 출근 들쑥말쑥한 스케쥴을 소화하는 것도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사람들로 인해 받은 상처가 더 큰 것 같다.

가끔은 너무 친절하고 착한 손님들 덕분에 함박웃음을 짓기도 했다.

일본어도 영어도 쓰고 가끔 스페인어도 쓸 수 있는 게 너무 좋았다.

하지만 심각하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나 싶은 사람들이 참 많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싫어하게 된 것은 처음이다.

그 사람들에게서는 단 하나의 장점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만 여기 모아놓은 건지 너무 신기하다고 말하면,

동기는 그런 사람들밖에 버티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고 했다.

정말 친절하고 착한 사람들은 금방 퇴사하곤 한다.

나도 버티고 버텼지만 이제 더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Good vibe only가 아니라 점점 Bad vibe only가 되어 간다.

매일 매일 내일은 출근하지 않기를 빌었다.


그러다가 태풍 제비가 왔다.

간사이 공항을 휩쓸었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거대한 유조선이 유일한 연결교를 박았다.

수도관을 건드렸다고 한다. 활주로가 물에 잠겼다.

당연히 활주로는 당분간 쓸 수 없게 되었고, 연결교도 불안정해서 전철은 물론이고 최소한의 차만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출근을 못하게 되었다. 신난다.

처음에는 동기들의 맨션이 정전되었다는 핑계로 우리 맨션에서 백수처럼 며칠을 놀았다.

그래도 아직 출근은 결정되지 않았다.

그리고는 고양이를 키우는 동기의 집엘 놀러 갔다.

예전부터 놀러가고 싶었지만 스케쥴이 맞지 않아서 가질 못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영화를 보고 맛있는 걸 먹고 고양이와 함께 놀며 웃고 떠들었다.

그래도 아직 출근은 결정되지 않았다.

동기의 소원이었던 유니버셜 스튜디오엘 갔다.

해리 포터의 덕후인 아이들과 할로윈 테마 덕분에 좀비 퍼레이드도 구경을 했다.

이윽고 저녁이 되었을 땐 너무 피곤했지만 마지막 퍼레이드를 꼭 봐야 한다는 동기의 말에 밤까지 기다렸다.

최고의 퍼레이드였다. 우리는 모두 감동을 받아서 한동안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래도 아직 출근은 결정되지 않았다.

결국 기다림에 지쳐 나는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출근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시간이 좀 있었지만,

다들 같은 생각이었는지 비행기표가 평소의 2배 정도였지만 망설이지 않고 결제를 했다.

가족들이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리웠다.

아직 귀국한 지 2달 정도밖엔 되지 않았는데 영겁의 세월이 지난 것만 같았다.

엄마 밥이, 따뜻한 집이 그리워 미칠 것만 같았다.

나는 외국에 나가는 걸 좋아해서 향수병도 시차도 한번도 겪은 적이 없지만 확실히 음식병은 있는 듯 하다.

정말 돈 아껴쓰고 사고 싶은 것도 못 사는 생활에 너무 질려서 알라딘에서 셜록홈즈 북램프를 샀다.

물론 사고 싶은 걸 다 살 수는 없겠지만 한 두개 정도 사는 건 괜찮은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돈을 버는 의미가 없으니까.

서울에서 동기들을 만나서 한강에서 치킨을 배달시켜 먹었다.

일본인 동기를 위한 체험이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모두 너무 행복했다.

치킨은 이리도 맛이 있는데, 우리는 왜 이걸 매일 먹지 못할까 라며 슬퍼했다.

다음날엔 아침부터 떡볶이를 먹었다. 너무 좋았다.

이 소소한 행복을 우린 매일 느끼지 못해. 너무 일본에 일하러 가기 싫다에 동의했다.

그렇게 17일 정도를 쉬었다.

'매일 출근하기 싫어서 기도했는데, 내 소원이 이뤄졌어' 라고 말했더니 동기도 말했다.

'내 소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