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내 진출을 위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있다.
단기 체류를 위해 쉐어 하우스를 찾고 있는데, 역시 마음에 쏙 드는 곳이 없었다.
그나마 가격대가 저렴한 곳을 보러 갔는데 쯔루하시에서도 몇 정거장이나 가야 하고 노선이 불편해서 초행길부터 너무 지쳤다.
대학교가 가까워서 예전부터 대학교 기숙사로 쓰였다고 한다.
겉보기에는 귀신의 집 같지만 안을 보면 포근한 보금자리입니다, 뭐 이런 인사말이 쓰여 있었던 것 같은데 정말 군데군데 창문에 테이프를 붙여놓고 했을 정도로 오래돼 보이긴 했다.
내가 이런 전통적인 일본 집은 처음이라고 했더니, 관리인은 메이지 유신 무렵에 지어져서 일본식과 서양식이 섞여 있다고 했다.
앤티크 느낌도 나고 그래서 그 당시엔 굉장히 획기적이었을 거라고.
주인도 건축가라서 집 자체는 튼튼하다고 지진 때도 태풍 때도 별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막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인이 와서 앉으라고 하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오사카 특유의 무뚝뚝함과 센 말투로 대뜸 언제 들어올 거냐고 물어서 처음엔 굉장히 당황스러웠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쁜 의도로 그렇게 말을 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 여러 군데 많이 둘러보고 나서 결정해.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돼. 일단 월 말까지는 방을 비워둘게.
라고 하시며 쉐어 하우스에 한번 살아보고 싶어서 쉐어 하우스를 보는 거냐고 물었다.
아뇨, 그냥 혼자는 외로워서요. 라고 했더니 그럼 살아본 적 있냐고 하시길래
쉐어 하우스는 없지만, 호스텔에서 살아본 적은 있어요. 2인실이었는데 3개월 정도 살았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친한 친구랑도 3개월 살기 힘든데 완전한 타인과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정말 대견하다면서.
뭔가 아이처럼 칭찬받은 느낌이라 쑥스러웠다.
단기간이라 버틸 수 있는 거지, 그리고 정말 룸메이트랑 마음이 맞지 않았다면 힘들었겠지.
그러면서 주인은 갑자기 피아노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건축 쪽 일을 오래 하면서 마당발인지 아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았다.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할머니가 피아노를 주겠다고 자기 집에 피아노를 가지러 오라고 해 알았다고 했는데,
20년 이상 안 썼으니까 조율이 필요할 거라고 해서 밑져야 본전이지 싶어서 피아노 조율사를 데리고 갔다.
너무 작은 집에 대단한 피아노가 있을 것 같진 않아서 의심 반 걱정반에 집으로 들어갔는데 불상만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대체 피아노는 어디 있냐고 했더니 불상이 올려진 흰 커버를 벗기자 피아노가 나왔다.
정말 피아노다, 라는 생각에 봤더니 무려 야마하 피아노였다.
역시나 조율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태라서 조율을 하려다가 이전 기록을 봤는데, 처음에 두 번 그 피아노를 조율한 사람의 이름이 집주인의 아버지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고베 쪽에서만 일을 하셨는데, 그 피아노의 주인도 고베에서 왔다고 했다.
그 사람은 당시에는 집이 엄청난 부자여서 부자의 상징인 피아노를 샀는데, 그 후로 집안 사정이 안 좋아졌을 때에도 결코 그 피아노만은 팔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십 년이나 간직해온 피아노인데 아무래도 자기는 피아노를 더 이상 치지 않으니까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싶었다고 했고,
그래서 집주인이 아는 아라시야마의 오또야 라는 라이브 공연장(?)에서 가져갔다.
거기서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이 그 피아노로 공연을 할 때마다 소리가 정말 좋다고 감탄을 했다고 한다.
집주인은 살다 보면 정말 신기한 일이 많다고 간절히 바라는 일은 꼭 이루어진다고 했다.
피아노도 그런 피아니스트들에게 연주되는 게 정말 기쁠 거야라고 말했다.
우연히 집 구경을 갔다가 집주인에게서 신기한 얘기도 듣고 많이 웃다가 왔다.
다다미식 방에서는 일본스러운 오래된 집 냄새가 났다.
언젠가 꼭 이런 곳에서 잠을 자고 싶었는데, 교통이 불편한 곳에서 살 자신이 없다.
안 그래도 집순이인데 고립되어 있으면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몇 번이나 다음에 놀러와, 다음에 오또야에 데려 가줄게 라고 말하는 집주인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앞으로도 좋은 일본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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