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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Reise/2018 : Japan

[오사카] 독서에 대해서

by 서키르케 2018. 10. 5.

쉐어하우스로 이사온 지 5일째, 아직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금전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초조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벌써 4일 동안 10권의 책을 읽었다. 하지만 올해 독서량은 60권을 겨우 넘었을 뿐이다. 목표가 100권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읽어야 할 책이 40권이라 생각하면 까마득하지만, 지금의 속도라면 16일이면 충분하다. 물론 이 페이스를 유지한다는 가정하에서만 가능한 일일 테지만. 나는 요즘 독서법에 빠져 있어서 그와 연관된 책을 많이 읽었다. 이지성, 정회일, 김병완, 사이토 다카시 등의 작가가 그 분야에서는 유명한 작가이고, 책을 읽을 때마다 연관 책들을 추천해주기 때문에 갈수록 읽고 싶은 책은 점점 더 늘어만 간다. 


처음에는 읽는 것이 좋아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 좋아서 열심히 책을 읽지만,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는 내가 책을 읽는 건지 책이 나를 읽는 건지 모르겠고 책에 잠식되는 기분마저 든다. 그래서 아마 몇 년 전에도 열심히 하던 독서를 관뒀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힘들 때마다 책을 찾는다. 그 안에 내가 바라는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굴도 모르는 나보다 이전에 태어난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래서 정말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8월에는 17권의 책을 읽었다.


대학 시절에는 번역가가 되고 싶었다. 나름 일본어에는 자신이 있었고 이를 활용해서 번역가가 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처음엔 교수님이 방학동안 번역 수업을 할 테니 들으러 오라고 하셨다. 주에 1번 정도로 부담도 없었고 그 수업에는 나와 한 학년 밑의 후배와 대학원을 다니는 아줌마들 몇 명만 있을 뿐이었고, 당연히 그중에 내가 일본어를 제일 잘했기 때문에 번역실력도 내가 제일 나았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걸 '번역' 실력이라고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인터넷 강의를 들었는데 띄어쓰기도 엉망이고 아무리 번역해도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스러운 표현밖에 나오질 않아서 결국 3개월만 듣고 그만 뒀다. 


그후에 영상번역수업을 들었다. 영상번역은 출판번역과는 달리 성우의 대사가 배우의 입이 열리는 순간부터 닫히는 순간까지 길이가 절묘하게 맞아야 하기때문에 어려웠다. 아무리 해도 선생님이 쓰는 것처럼 아름다운 표현을 쓸 수가 없었다.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써서 번역을 한 티가 나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한국소설을 많이 읽고 한국어로 된 만화를 봐서 아이들의 입장에서 대사를 써야 하고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게 글을 써야 한다고 하셨다.


생각해보면 중학교때부터 미드에 빠져 살았고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는 일본어 원어로만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등을 봐왔고 책도 일본소설을 자주 읽었으니 국어공부를 할 시간이 점점 사라졌던 것이었다. 번역이 단순히 외국어 실력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진작 알았어야 했고, 책을 더 자주 읽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요즘에서야 뒤늦게나마 독서를 제대로 하고 글쓰기 공부 또한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점차 나아질 거라고 믿고 있다. 글쓰는 것도 참 서툴고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연습하기로 했다.